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숨이 안정된 리듬을 찾고 침묵이 내면에 자리를 잡아갈 때 즈음 난데없이 어떤 생각이 나타납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점에서 닌자 같아요.
조용해진 틈으로 어느새 나타난 생각은 가끔은 연속적인 이야기를 만들며 길게 이어지기도 하고, 또 가끔은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계속 바뀌어 갈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동시에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요.
나도 모르게 생각을 따라가거나 빠져있다가 문득 알아차리고 다시 숨으로 돌아옵니다. 어떤 때는 생각의 침범이 너무 심해서 내가 지금 명상을 하는 건지, 생각하려고 자리에 앉아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런 저 자신을 발견하고 낙담하고 속상했어요. ‘내가 명상에 소질이 없는 건가?’,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가?’, ‘이럴 거면 뭐 하러 명상을 하나, 그냥 처음부터 아예 생각을 하지.’ 하며 스스로를 의심하고 책망했지요.
그래서 명상할 때 절대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하고 명상해보았어요. 그랬더니 눈을 감고 호흡하는데 의식이 날카롭게 곤두서며 몸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어요. 의식이 잠잠해져야 하는데 생각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느라 오히려 더 각성한 거죠.
목뼈 뒷부분과 어깨가 뻣뻣해지는 걸 깨닫고서 눈을 떴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명상 중에 생각이 떠오르면 알아차리고 다시 숨으로 돌아오면 된다는 건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생각에 빠져있는 시간이 너무 길거나, 그게 아니면 생각과 호흡을 오가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같아서 불안해졌지요.
어쩐지 이러는 건 명상이 아닌 거 같았어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올라오고 당황스러웠지요. 처음 명상을 시작했을 때 좋았던 그 느낌은 사라지고 명상을 잘 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기만 했어요.
명상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께 물어봐도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알아차리고 돌아오라.”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수밖에요. 생각이 일어나는 거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하다 보면 차츰 나아질 거라 믿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했어요. 명상을 ‘잘’하면 좋겠지만 명상하는 거 자체가 이미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아주 잠깐의 평안일지라도 그걸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명상하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했지요.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마어마하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요. 명상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서 꼼짝도 안 하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잠깐씩이나마 호흡에 온전히 머무를 때 느끼는 평온함은 무척이나 감미로웠습니다.
내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을 알아차리고 보내는 일을 반복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이 곧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상태’에서 ‘생각하고 있음을 아는 상태’가 되었어요. 생각을 구경한달까요?
‘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이런 걸 기억하고 있구나...’ 이렇게 알아차리고 보내는 거죠. 그리고 다시 호흡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생각에 대한 판단을 점점 내려놓았고, 더불어 명상하는 내 상태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면서 혹시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점검하려는 마음도 내려놓게 되었어요.
명상 중에 생각의 방해를 많이 받는 날도 있었지만, 생각이 별로 나지 않고 호흡을 잘 바라본 날도 많아졌지요. 물론 아예 생각의 삼천포로 빠져서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깨닫는 날도 있었고, 심지어는 잠에 빠진 날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경험을 군말 없이 수용하면서 매일 명상하는 루틴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명상하면 할수록 생각을 바라보는 힘도 조금씩 커져갔어요. 어떤 생각을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주의를 가져올수록 그 생각의 무게가 줄어들고 가벼워지더군요. 상당히 오랫동안 나의 관심을 끌고 마음을 힘들게 했던 고민이나 문제도 명상하면 할수록 심각한 정도가 옅어지다가 어느새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어요.
그렇게 내 안에 꽉 차 있던 수많은 근심과 염려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을 잃게 되었고, 내 마음은 점점 가볍고 밝아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림책 <물고기가 댕댕댕>은 생각 때문에 명상을 망친 것처럼 느껴질 때마다 펼쳤던 책이에요. 산사의 처마에 매달린 풍경에 연결된 작은 물고기가 절을 떠나 멀리 갔다가 되돌아오는 여정이 마치 명상의 과정처럼 느껴졌거든요.
바람이 불면 물고기는 깨어나 하늘을 날아 산사 밖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마당을 쓸던 동자승의 놀란 표정이 어찌나 귀여운지 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작은 물고기는 커다란 부처상과 ‘안녕.’ 인사를 나누고 산으로 날아갑니다.
숲과 계곡을 유유히 지나던 물고기는 놀고 있는 곰들을 만나고, 다음에는 뛰어다니는 토끼와 개구리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지요. 이런 장면들이 명상하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는 내 모습을 연상시켰어요.
그러다 물고기는 커다란 새를 만나는데 그 새가 물고기를 먹으려다가 삼키지 못하고 퉤 하며 뱉어버리죠. 그 바람에 하늘을 날던 물고기는 이제 물속으로 들어가 다른 물고기 떼를 만나 따라다닙니다. 실컷 놀았는지 물고기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자신의 길을 가지요.
이때 ‘고요한 마음을 깨우는 소리’가 ‘댕댕댕댕댕’ 들리며 물고기의 몸이 일곱 토막으로 나뉩니다. 때마침 비가 쏟아지네요.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서 굵은 비가 세차게 떨어집니다. 그리고 수많은 물고기가 비와 함께 떨어지지요. 마치 물고기의 여러 분신인 것처럼 보여요. 마침내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잠잠해지자, 물고기는 산사의 풍경으로 되돌아와 잠이 들지요.
빗속에서 물고기는 자신에 대한 어떤 깨달음을 얻은 걸까요? 구태의연하게 붙들고 있던 자아상이 토막이 나면서 깨지고 새로워지는 과정이었을까요?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내면의 여러 자아가 떨어져 나가고 본질적인 자신을 만난 것일까요? 자신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고정관념이 산산조각난 것으로 보이기도 해요.
조각난 물고기의 몸, 비와 함께 떨어지던 수많은 물고기의 모습은 볼 때마다 속이 시원해져요. 묶었던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 같달까요? 후련하달까요? 빗물에 깨끗하게 정화되어 새로워진 것 같아요.
이제 물고기는 깊은 잠에 빠졌고, 산사의 밤은 깊어만 갑니다. 먼 산 위에 떠 있는 작고 둥근 달이 은은하지만 또렷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림책은 끝이 납니다. 마치 달님이 산 전체와 산사, 그 안의 물고기를 지켜주는 것만 같아요.
책장을 덮으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안도감에 저도 모르게 책을 꼭 끌어안게 되어요. 바람을 맞고 살랑살랑 움직이는 물고기가 내는 청명한 풍경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한지 위에 푸른 먹이 농담에 따라 그 색을 조금씩 달리하며 산속의 절과 동물들을 투명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그림 또한 글과 어우러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맑게 정화합니다.
명상하는 동안 생각 속에서 어딜 떠돌아다니고, 무얼 보고 만나든, 물고기가 자기 자리로 돌아와 고요한 평온함 속에 머무르는 것처럼 나도 지금 여기서 숨 쉬는 나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평온함을 느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속에도 작은 달이 하나 있어 나를 비춰주고 있는 것 같아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