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누구나 한 번쯤 타인에게 상처 받는다. 막상 상처 준 사람은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상처 받은 사람은 그 기억으로 꽤 오랜 시간 힘들어 하고 상처 준 사람의 얼굴도 영영 잊지 못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은 상처 받을만 했다는 합리화로 또 다시 스스로 상처를 덧입힌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거기에 머무르며 상처를 되씹기보다 다양한 아픔 속에서도 스스로 치유법을 찾아 꾸역꾸역 힘내어 일상 속으로 한 걸음을 다시 내디딘다. 내가 선택한 방법도 그랬다.
속으로 끙끙 앓아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의 달인이 되어 일상 뒤에 숨어버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상해졌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냥 내 편이 되어주는 일명, ‘믿을만한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이런 일을 겪었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길까, 나 정말 짜증 나!’식으로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탈탈탈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글을 연재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상하게 심야메일 4인방 작가님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힝, 나 힘들었쩡~’식으로 징징대며 아주아주 오래된 혹은 바로 엊그제 경험한 억울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는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네 명의 작가들은 찐 리액션과 함께 내 이야기를 들으며 어떨 땐 나보다 더 화를 내주고, 나만큼 분노하다 또 어떨 땐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토해놓듯 부정적 에너지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에 대해 미안함과 송구함이 들어, 의식적으로 ‘오늘은 그때 일까진 이야기 하지 말아야지’하고 마음먹을 무렵, 한 작가님이 말했다.
“작가님. 이걸 글로 쓰면 어때요? 우리에게 말한 것들을 한번 글로 써보세요!”
<세상에 뿌려진 갑질만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 한 가지를 꼭 밝히고 싶다. 이 연재글은 경험에 근거해 작성되었지만 기승전결 모두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작성한 내용임을 밝힌다. 인간의 기억이란 참으로 간사해서 사실 경험 후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떠올려 보면 모두 다 내 중심으로, 나에게 유리하고 타당하게 <편집-각색-변형-재해석>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떠올려진 기억이 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없던 기억이 생뚱맞게 기록되고, 있던 기억이 사실보다 훨씬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음을, 경험에 근거하고 허구를 가미해 쓰인 내용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혹시나 연재 글을 읽고 어떤 사건이나 인물 묘사 중 ‘혹시 내 얘긴가?’하고 의심이 든다면, 맞다. 당신 얘기가 맞다. 하지만 너무 마음 찔려 하지 말라. 미안해하지도, 연락하지도 말라. 그 시절 당신을 나는 벌써 용서했다.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참 불편하고 씁쓸했다. 글을 다 쓰고 꼭 퇴고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과정 또한 무척 미루거나 피하고 싶었다. 쓴 글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기억이 떠오르거나 희석되었던 감정이 다시금 몽골 몽골 뭉쳐 올라와 또 울컥했다. 또한 내 입장만을 내세우거나 나의 타당성과 타인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수정.보완이 이루어질 때마다 나는 무척 감정이 상했다. 나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여서. 내 입맛에 맞게 고쳐지면 고쳐질수록 초라한 나를 더욱 초라하게 감추려 드는 것만 같아서.
그래도 나는 쓴다, 내 이야기를.
세상에 뿌려진 크고 작은 갑질만큼이나 세상에 좋은 관계,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그래서 모래알 같은 갑질러들과 바위산 같은 갑질 사건들이 봄바람에 눈 녹듯 어느 순간 샤르르, 사라지고 무너졌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잊고 싶었던 내 과거를 들쑤셔본다. 팍팍팍.
잊고 지냈던 지난 인연들을 들춰내본다. 촥촥촥.
* * *
“씨발 년아. 너 내가 우스워 보이냐?”
살면서 욕을 한 번도 안 들어본 건 아니었지만 성인 남자에게 목을 잡히며 부라리는 두 눈과 함께 들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예상치 못한 씨발년 공격은 눈물이나 울분 혹은 저항이나 반항을 가장한 그 어떤 몸부림도 유발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씨발년 소릴 들을 정도로 잘못한 건 절대 아니었다. 타이밍이 좀 애매했을 뿐. 진짜 씨발년 소리를 들어야 할 년은 따로 있었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알고 있었다. 다들 그저 그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 암전 속 누군가가 멀리서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 얼른 미안하다고 해요."
아씨, 저 썅년.
속에서 욕이 나왔다. 정작 씨발년 소릴 들었어야 할 그년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난 늘 그랬다. 억울했지만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늘 일이 다 끝난 후에야 ‘그때 왜 그랬어!’ 하며 혼자 이불킥했다. 싫어도 좋은 척,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어쩔 수 없는 그게 나였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감정이 널뛰기 하고, 손해 보는 일은 많아도 누군가에게 폐 끼치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속과 생판 다른 겉모습도 문제였다. 날카로운 얼굴형과 야리야리한 몸매로 똑 부러지는 깍쟁이, 자기 몫 알뜰히 챙기는 여우, 냉정한 싸가지로 생겨먹어 난 늘 불필요한 오해를 사고, ‘생각보다 착하다’는 이상한 평가를 받곤 했다. 처음엔 나를 무척 어려워하던 사람들은 몇 번의 만남 후 나를 대충 파악하고 나면 은근슬쩍 이용하곤 했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이용당했다는 걸 늘 늦게 깨닫는 거였다. 씨발년 소리도 내가 들어야 할 쌍욕이 아니었다. 씨발년은 오리 역할을 맡은 그년이었다. 그년은 눈치가 빨랐다. 적어도 나보다는. 당시엔 그걸 몰랐다. 너무 늦게서야 알았다.
기본기도 없이 연기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연극 배우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오디션은 떨어지기 일쑤였고 지인 소개로 작품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이 선배, 저 후배 눈치보는 게 일상이었다. 어디 학교 출신, 어떤 교수 제자, 누구의 선배, 누구의 후배... 우리나라 예술계 내에선 학연과 지연은 알게 모르게 최고의 무기이자 비빌 언덕이었다. 그들만의 리그 같은 분장실 안에서 난 어떻게든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나와 두 살 터울 후배였지만 누구보다 쾌활한 성격에 리더십과 추진력이 좋았고 지인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향한 러브콜은 끊이지 않았고, 어디서든 누굴 만나든 그녀는 분위기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난 그런 그녀의 자신감이 무척 부럽고 또 멋져 보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신만만 그녀와 다르게 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일이 잦았다. 기본기가 없으니 기본 태도라도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늘 가장 먼저 도착해 분장실 청소를 하고, 식사할 땐 당연한 듯 배달 음식 세팅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가장 마지막 차례에 분장을 지우며 나름 성실한 배우로서의 루틴을 쌓아나갔다. 처음에는 그녀도 무척 고마워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이 실력이 부족하고 인맥이 짧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순간부터 날 조금씩 물 먹이기 시작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말이다.
“역시, 언니가 청소하는 날엔
분장실에서 빛이 나요.”
분장실 청소 담당은 따로 없었다. 그러니 어지르는 이 따로, 치우는 이 따로인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암묵적으로 가장 어린 막내가 청소 담당이었지만 그녀는 물티슈로 자신의 휴대폰만 닦을 뿐 얼룩진 거울 한 번 닦질 않았다.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호의를 베풀었다. 하지만 함께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어느 날부터 분장실 청소는 내 몫이 되어버렸다.
“이건 언니가 제일 잘해요!
내가 잘 안다니깐요.”
귀찮거나 복잡하거나 섣불리 그 누가 나서지 않는 곤란한 상황에서 그녀의 말 한 마디로 순식간에 난 경험자가 되기도 했다. 날 잘 안다는 듯 웃는 상으로 자연스럽게 나를 치켜세워 주는 그녀에게 물음표 눈빛을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당시엔 잘 모르다가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귀찮고 복잡해서 누구나 꺼리는 그 일을 하다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현실자각타임을 혼자 감당하며 깨달았다. 내가 보낸 물음표 눈빛을 그녀는 분명 물음표 그대로 잘 받았지만, 순식간에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느낌표로 바꿔 내보였단 사실을.
“언니, 전에 이거 해봤다고 그랬었죠?
‘한번’만 보여주세요.
‘다음’에 제가 할게요.”
그녀에게 ‘다음’은 없었다. ‘한번’도 없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 앞에서 늘 그녀는 서툴고 낯선 초보자가 되었고 반면 조금이라도 이익이 되는 일 앞에서는 누구보다 재빠른 도전자가 되었다.
말. 말. 말.
그녀는 말로 사람요리를 참 잘했다.
그날도 난 분장실을 정리하고 오리와 늑대, 새 역할을 맡은 배우들 사이에서 요염한 고양이 분장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평소에 내가 유독 어려워하던 남자 선배에게 오리 역할의 그녀가 은근슬쩍 말장난을 걸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그를 어려워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렇게 당당하게 선배에게 장난을 거는 그녀의 모습조차 참 부러웠다.
한 번 농담, 두 번 농담, 세 번 농담. 남자 선배의 겉모습을 희화화한 농담은 몇 번이고 계속되었고 반복될수록 수위는 높아져만 갔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유독 코가 컸던 선배의 얼굴 특징과 평소 걸음걸이와 관련된 농담이었던 것 같다. 그 오리 역할 후배가 몸짓, 발짓, 과한 동작을 하며 장난칠 때마다 분장실 분위기는 웃음바다가 되고, 남자 선배 또한 함께 호탕하게 웃었다. 나도 섞여서 같이 웃었다. 공연 시간이 임박해오자 분장실 안 웃음소리가 관객석까지 새어나갈까 봐 배우들은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큭큭 대며 숨죽여 웃기도 했다. 여자 후배는 그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공연 시작 직전 무대 뒤에서 대기를 할 때까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웃음을 유발했다. 장난의 주인공인 늑대 역할 남자 선배도 분명히 환하게 웃었다. 아, 그때 내가 참 눈치가 없었다. 그냥 나도 웃고 넘겼어야 했는데.
그 연극은 하필, 막이 오르면 그 남자 선배 역할인 늑대와 내가 맡은 역할인 고양이가 가장 먼저 마주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난 가뜩이나 어려웠던 그 선배와의 분위기를 업! 시키고자 오리 역할 그녀가 몇 번이나 했던, 방금까지도 했던 농담을 똑같이 입 모양으로만 중얼거리며 남자 선배를 쳐다봤다. 내 입모양을 읽은 선배는 갑자기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정반대 편에서 성큼성큼 걸어와 내 목을 한 손으로 잡고 이렇게 말했다.
“씨발 년아, 너 내가 우스워 보이냐?”
난 당황과 당혹을 넘어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 이상하다. 방금까지 쟤가 할 땐 웃어놓고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더 짙게 떠오른 생각은 ‘아, 공연 망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었다. 어떻게든 얼른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연극을 잘 끝마쳐야 했다. 난 선배를 쳐다보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일단 잘못했다고 빌자, 라는 마음으로 얼른 사과하려는 순간 어두운 정적 속 저 멀리서 얄밉게 울리던 그 년의 속삭임이 아직도 귓가에서 들리는 듯 하다.
“언니, 얼른 미안하다고 해요.”
씨발 년,이라는 욕도 기분 나빴지만, 한순간에 자기는 쏙 빠진 채 세상 착한 표정으로 나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의도를 가득 담은 그녀의 목소리가 더 기분 나빴다. 그 년도, 나에게 욕을 한 그 선배도 내가 제일 만만했을 거다.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도 생각했을 거다. 난 그녀보다 모든 면에서 약했으니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자 선배는 왜 나에게 욕을 했을까. 추측건대, 당시 후배가 장난을 걸어올 때마다 그 선배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참을 인’을 새기고 있는 와중이었을 것 같다. 애써 표정 관리하며 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고 있는데 눈치 없이 혹은 때마침 끼어든 나에게 화풀이용 불씨가 당겨진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무대 위 배우끼리의 서먹서먹한 분위기와 달리, 다행히 연극은 평소처럼 무사히 커튼콜까지 잘 마쳤다. 의상을 갈아입으면서도, 분장을 지우면서도 다들 눈치만 볼 뿐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은 채 헤어졌고, 그다음 날에도 연극은 무사히 시작되고 끝이 났다. 그렇게 한 3주 정도 흘렀을까. 우리는 모든 연극 스케줄을 마치고 쫑파티까지 한 뒤 헤어졌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까지도 그날의 일을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변한 것은 남자 선배와 나의 어색함 뿐, 여자 후배는 평소와 다름없이 쾌활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며 쫑파티까지 웃는 얼굴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씨발년 사건의 여파는 꽤 오래갔다. 다행히 나에게 욕을 했던 그 남자 선배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년은 생각보다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정말 짜증 났다. 예상 가능하게도 그녀는 주변인들에게 그날 일의 주범을 ‘공연 직전까지 선배에게 까불다 큰 코 다친, 철 없는 고양이 역할 걔’, 바로 나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난 가까운 이에게만 속내를 비쳤을 뿐, 소문만 듣고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는 그날의 이야기 대신 ‘오해로 벌어졌지만, 분명 후배인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일’로 정리해 주었다. 그게 속 편했다. 그리고 난 눈으로 깨닫고, 몸으로 익혔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고, 보자 보자 하면 보자기가 된다’는 말의 의미를.
몇 년 전, 정말 오랜만에 그녀와 대학로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녀는 “어머, 언니!” 하며 특유의 제스처로 날 반겼다. 누구누구를 통해 내 안부를 알고 있었다면서 멋지다고 칭찬까지 더하며 부럽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때 일, 이젠 많이 괜찮아졌죠?”하고.
아.. 때린 데 또 때리는 년,
세상 나쁜 년.
웃으면서 확인 사살하는 년.
“너가 내 인생의 씨발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