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 – 제 4화 ]
명상하다 보면 내 감정과 생각을 알아차리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감정과 생각이 모두 마음에서 비롯되니 자연히 마음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지요. 눈을 감고 나의 내면에 집중할 때면 거기에 어떤 공간이 있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도 마음을 생각하며 지금 한번 해보세요.
넓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공간이 있지요. 그것이 바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정말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그림책 <마음의 집>은 이런 마음의 공간을 잘 이해하고 풀어낸 수작입니다. 그림책에는 보이지 않는 화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마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같다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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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집도 우리들이 사는 집처럼 문, 창문, 방, 계단, 주방, 화장실이 있대요. 사람마다 마음의 집은 모양도 크기도 다 다르답니다. 집안 곳곳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들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내 마음의 집은 어떤 모양일지 저절로 상상하게 돼요.
나는 문을 얼마만큼 열고 사는 사람일까? 아예 닫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활짝 열어둔 사람도 아닌 거 같아요. 내 마음의 방은 많은 사람이 오갈 수 있게 넓은가, 혹은 겨우 나 한 사람 들어갈 정도로 좁은 건 아닌지? 어떤 때는 넓었다가 어떤 때는 좁았다가 방이 계속 변하는 거 같아요.
마음의 집에는 두 개의 창문이 있대요. 한쪽에서는 매일 비가 내리고, 다른 쪽에서는 매일 해가 쨍쨍합니다. 명상을 시작한 후로 저는 주로 해가 쨍쨍한 창문 앞에 서게 되었지만, 비 오는 창문 앞에 하염없이 서 있었던 지난 한때를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높이가 늘어나는 계단도 있어요. 계단을 오르며 내가 성장했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다 주저앉아 운 적도 있지요. 부엌에서는 마음을 요리하여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요. 예전에는 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요리를 줘도 잘 먹어줄 거라 기대했지만, 이제는 상대방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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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면서 나는 계속 내 마음의 집을 새로 고치고 있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꼴을 갖춘 내 마음의 집이 얼마나 견고하고 단단한지 말이죠.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고정된 사고방식, 편견, 신념 때문이지요. 이런 마음의 집에는 나름의 의지가 있어서 지금 모습 그대로인 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다며 변화에 저항합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말이죠.
나는 문을 더 열어도 괜찮다고 달래야 했고, 계단을 하나씩 없앴고, 창문이 더 투명해지도록 닦았습니다. 그러면서 집을 새롭게 하는 이 작업은 끝이 없이 계속하는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평생에 걸쳐 요새 같은 집을 만들어왔는데, 그 집을 허물면서 어쩌면 가장 안전한 집은 벽도 없고, 담도 없는 너른 벌판 같은 공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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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마음의 집이 생각으로 꽉 찼다는 거예요. 명상을 시작하기 전에도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해 별로 문제의식을 느끼진 못했어요. 그런 상태가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내가 그런 사람인 걸 달리 어쩌겠나 하며 신경 쓰지 않았지요.
하지만 명상을 통해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생각이 쓸데없으며, 그런데도 그런 생각을 하느라 감정 소모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건 내 힘을 뺏는 일이었어요.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은 10%도 안 되는 거 같았습니다.
나머지는 뉴스 같은 미디어나 SNS에서 본 것들을 곱씹으며 평가하고, 정치인이나 주변 사람 같은 누군가를 비판하며 계속해서 시비를 따지고, 매 순간 경험하는 모든 것에 좋은지 싫은지 딱지를 붙이는 걸로 채워지고 있었지요.
생각하는 동안엔 그 생각에 빠져있느라 이런 생각들이 안 해도 그만인 생각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어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기가 일쑤였어요. 좋은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에 관심이 쏠렸고, 그 결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지배하게 되었어요. 내게 세상은 고쳐야 할 게 너무 많은 문제투성이였고, 이해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는 이상하고 나쁜 사람들이 많아 살기 힘든 곳이었지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나는 자주 짜증이 났고, 화가 일었고, 우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다 고칠 수는 없으니, 무력감을 느꼈고, 체념하면서 나도 모르게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있었어요. 인간관계나 일에 있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분통을 터트렸지요.
물론 제 일상에는 기분 좋고 즐거운 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때문에 내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지배적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지요. 나처럼 옳고 상식적인 사람이 잘못된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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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마음속 생각들을 바라보게 되었고, 차차 이게 그저 내 마음의 습관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만사를 비판적으로 생각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그 부정적인 감정은 다시 비판적인 생각을 일으키며 순환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걸 발견했지요.
내 마음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니 비판적 사고는 언제나 나를 더 똑똑해 보이도록 만들어 주었고, 내가 해온 공부나 작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더군요. 질문과 대안을 찾기 위해선 먼저 문제를 찾아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삶 전반을 지배하게 될 줄은 몰랐지요.
“세상은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인가?”
마침내 나는 내 마음이 보고 있는 세상을 의심하게 되었어요. 내가 그런 ‘식’으로 바라본 것일 뿐 그게 세상의 참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본 게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틀리는 편이 나에겐 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세상이 내 생각보다 좋은 곳이란 뜻이었으니까요.
나는 내 마음의 집을 채운 부정적인 생각들과 고집스러운 편견과 신념, 그리고 그에 따른 어두운 감정을 버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버리면 버릴수록 행복을 더 잘 느끼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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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마음의 집에 화장실이 있다고 이야기해요. 친구가 미워질 때,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때, 잘난 척하고 있을 때, 싸우고 싶을 때 변기 손잡이를 꾹 누르라고 권합니다. 마음 비우기에 대한 너무 좋은 비유지요. 명상을 통해 나는 마음의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온갖 생각과 감정들로 포화상태인 내 마음의 집에는 나조차 쉴 곳이 없었으니까요. 생각과 감정을 비운다는 것은 기억상실이 된다거나 무감각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온갖 생각에 매여 휘둘리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거지요. 정말로 마음의 주인이 되는 거예요.
눈을 감고 호흡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음의 변기에 넣고 흘려보냅니다. 수개월에 걸쳐 버려도 다 버려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도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버리고 또 버리고 있는 질긴 생각도 있지요. 조급해할 것 없어요.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이제 내 마음은 무언가를 판단하려고 예전처럼 애쓰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체로 수용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요. 물론 이게 늘 잘 되는 건 아니에요. 다시 옛날에 하던 대로 돌아가 버린 것처럼 느낄 때도 많아요. 그럴 때는 그런 나조차도 수용하려고 합니다. 나는 과정 중에 있을 뿐이니까요. 그저 전보다 조금이나마 마음이 더 비워지고 더 열려있는 상태가 된 것에 감사합니다. 세상을 긍정하고 더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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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마음의 집>은 한지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하늘색 바탕 위에 단정하게 그려진 사람과 사물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우리 마음의 본래 바탕이 맑은 하늘 같은 푸른색이라고 말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청명한 하늘 같은 마음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명상하며 마음의 집을 비웁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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