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
마음이 몹시 괴롭던 때에 운명처럼 명상을 만났습니다. 당시에 저는 삶에 몹시 화가 난 상태였지요.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내 잘못이 아닌 일로 고통받아야 했어요. 정말이지 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부당하게 느껴졌어요.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온 결과가 이런 거라면 더는 열심히 살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산다면 그런 삶에는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요.
저는 크리스천인데 당시에는 기도하는 것도 싫어할 정도였어요. 하나님께 계속 간구하는 행위가 입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 말할 기운도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면서 신이라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반항심이 일어났고, 배를 째라는 심정으로 삶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떻게 처음 명상을 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견딜 수가 없는 심정을 어찌할 줄 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고, 마음공부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그러다 명상을 알게 되어 그게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된다니까 한 번 해본 거 같아요.
그 한 번이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고, 그래서 또 하고, 또 하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계속하게 된 거죠.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마치 로뎀 나무 아래 누워서 삶을 포기하고 있던 선지자 엘리야에게 천사가 찾아왔던 것처럼 저에게 명상이 찾아온 거 같아요.
하지만 명상하는 날들이 마냥 좋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마음공부에 관한 책을 읽고, 명상하는 날들이 쌓여갈수록 알 듯 모를 듯한 깨달음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답답해졌지요. 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책을 읽으며 인간의 내면 세계와 영혼에 대한 깊고 아름다운 통찰에 감동을 받고 한껏 고양되었지만 책의 말미에 나오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어요.
꼭 위대한 그루가 아니더라도 마음공부와 명상 분야에서 알려진 선생님들과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죽다 살아난 것 같은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셨더라고요. 갑자기 삶이 180도로 바뀌는 거죠. 병이 낫거나, 회사를 때려치우고 멀리 떠난다거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말이죠.
명상 수련을 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꾸만 그분들의 경험에 비추어 나를 비교하게 되더군요. ‘나에게는 왜 저렇게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 ‘내 수행이 뭔가 잘못된 건가?’, ‘나는 깨달은 건가, 아닌가?’, ‘이러다 영원히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다행인 것은 그런 의심 속에서도 명상을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명상의 힘인 거 같아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일단 명상을 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지고 살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지요. 그렇게 또 시간이 쌓이면서 그 많았던 질문에 대해 어느새 답을 알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신기한 일이었어요. 선생님들과 선배들에게 물어봤을 때 그분들이 참으로 친절하고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 답답했던 게 분명히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그걸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는 거예요. 나만 알 수 있는 은밀한 기쁨이 가슴에서 솟구쳤습니다. 아마도 많은 일상의 수행자들이 각자 자기만 아는 이런 소소한 깨달음의 기쁨을 느끼고 있겠지요. 그걸 상상하면 기쁨은 배가 됩니다. 그들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기쁨이 윤슬처럼 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장면이 떠오르거든요.
명상을 시작한 지 2년이 훌쩍 넘었지만 제 삶에는 여전히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표면적으론 말이죠. 하지만 저는 느껴요. 제가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저는 겉으로는 변한 게 하나 없어 보이는 지금 이 삶을 온 맘으로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이게 진짜 기적이 아닐까요? 있는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삶을 긍정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게 된 거 말이에요.
제가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지금 여기가 괜찮은 사람이 되어서, 그리고 아마 저기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전보다 훨씬 많은 것들에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렇게 편안해져서 정말 좋아요.
혼자 웃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평범한 수행자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명상이 어렵고 거창한 무언가로 여겨져서 다가가지 못하는 분들에게, 그리고 예전의 저처럼 명상을 하는데도 별로 달라지는 게 없는 거 같아서 낙담하고 실망한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격려가 되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었습니다.
* * *
[ 숨 – 제 1화 ]
눈을 감고 나의 호흡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숨이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봅니다. 몸이 천천히 이완되어 가는 게 느껴져요. 내가 숨을 쉬는 소리가 귀에 들립니다. 마치 한밤중에 모두가 잠들어 사방이 고요해지면 그때야 귀에 들리기 시작하는 시계 소리처럼 말이죠.
나는 숨 쉴 때 소리가 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사람처럼 조금 놀랐습니다.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들립니다. 심장이 움직이는 것도 느껴졌지요. 갑자기 의식이 몸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을 보이며 흩어지려는 찰나, 의식을 붙잡아 다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바라봅니다.
내가 숨을 바라볼 때 숨은 마치 나와 분리된 것 같았어요. 숨은 저절로 들어왔다가 저절로 나가며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지만, 그것은 나의 의지나 의도와는 전혀 무관했지요. 알아서 들어오고 또 나가면서 차츰차츰 안정적인 리듬을 찾아갔습니다. 따뜻한 물 아래로 무겁고 깊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척 편안했습니다. 어떤 안도감마저 들었어요.
“살아있구나... 살아서 이렇게 숨을 쉬는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에 힘을 풀고 무심히 숨만 바라본 저의 첫 번째 명상은 너무 당연해서 아예 잊어버렸던 ‘살아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거 같은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숨만 제대로 쉬어도 이렇게 살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 게 놀라웠어요. 비록 잠깐일지라도 마음이 진정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이걸 계속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첫 번째 명상 이후, 저는 자주 ‘살아있음’을 의식하려고 노력했어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바라보는 일은 삶이 내 의지로 시작된 게 아님을 새롭게 환기시켰어요. 나는 ‘나의’ 삶이라고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나에 의해 비롯된 게 아니며,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신체 기관들의 모든 생명 활동은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알아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살아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게 보였어요. 나 아닌 무언가가 내가 살아있도록 숨을 쉬게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렇게 숨을 쉬는 나와 그것을 의식하는 나 사이의 거리를 느끼면 느낄수록 명상이 더 재미있어졌어요.
나를 ‘너’라고 부르며 나더러 “처음에는 엄마의 배 안에서 점처럼 작았지. 그리고 점처럼 작기 이전에는 그냥 하나의 생각이었지. 누군가 너 같은 아이가 생기면 신날 거 같다고 생각했던 거야.”라고 말하는 그림책 <너>가 떠올랐어요.
하나의 생각이 숨을 일으켜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애틋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생각이었든, 아빠의 생각이었든, 하나님의 생각이었든, 혹은 그 모두의 생각이었든 어쨌든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 생각이 내게 숨을 불어넣어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충동마저 일더군요.
여전히 현실은 지긋지긋했고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아무리 헤아려도 알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쉬는 이 한 호흡이 귀하다는 생각은 밀어낼 수 없었어요.
*
그림책 <너>는 큰 붓으로 쓱쓱 그린 것처럼 비정형적인 형태의 예쁜 빨간 하트 그림과 함께 내가 나인 이유가 내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맞장구를 쳤지요. 맞아. 내가 나인 이유는 심장이 뛰고 숨을 쉬기 때문이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나인 거지.
그러데이션으로 표현된 하늘색과 노란색의 지면을 손톱만큼 작고 단순하게 그려진 캐릭터들이 천사의 날개를 달고 유영하면서 내가 왜 나인지를 묻기도 하고,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내 몸,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일관성 없이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감정들,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것들을 돌아보게 했어요.
그림책은 말했어요. “너는 너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하는 곳이야. (...) 너는 네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지. 비록 너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말이야.”라고. 까만 바탕에 살색과 갈색으로 쭈글쭈글 거칠게 표현된 뇌 그림을 보면서 이 뇌 속에 들어있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것을 나의 이야기라고 믿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해졌어요.
다음 장에서 그림책은 “네가 네 생각이라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때는 너는 누굴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림책은 “너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니?” 물으며 “너는 너일 수 있으니 꽤 운이 좋은 거야.”라고 말하며 끝이 납니다.
전과 다르게 그림책의 이 마지막 장면들이 메아리가 되어 가슴에서 반복되었어요. 이후에 이어질 저의 명상 생활에 바탕이 될 화두가 던져진 거지요.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바라보는 명상을 하고, 마음공부를 하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거지 같은 현실과 씨름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었지요. 모든 것이 숨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