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엄마에 관해 쓰겠다고? 엄마를 주제로 한 글쓰기를 계획하면서 가슴이 꽉 막혔다. 첫 책 <엄마 되기의 민낯>에서 엄마와 나의 갈등을 쓴 적이 있다. 아이에게 부실한 밥을 해줄 때마다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과 함께, 식구들 밥해주는 걸 축복으로 알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라 괴로웠다. 또 엄마는 수시로 내 살림에 참견하며 치고 들어오곤 했다. 엄마는 내 집이 당신 집인 듯, 내 집에 방문할 때마다 당신 취향의 물건들을 잔뜩 들고 왔다. 올 수 없을 땐 집요하게 전화했다. “냉동실에 있던 황태는 치워야겠더라.” “이불이 너무 얇던데 바꿔주리?” 첫 책에서 두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 다시 엄마에 대해 쓰지 않았다.
남들은 부러워한다. 딸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하는 엄마가 있다고. 그러나 나는 엄마를 힘껏 밀쳐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엄마에게 받는 만큼 감정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보답해야 했으니까. 엄마는 자신을 섭섭하게 한 일에 대해선 40년이 지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대화한 사람의 표정과 억양까지 되살려내는 놀라운 능력을 갖추고 있다. 엄마는 나의 감사를 원했고, 매일 무엇을 먹었고 보았고 겪었는지 시시콜콜 보고받는 밀착된 관계를 원했다.
조금 상냥한 말투로 일주일에 한 번 연락하면 그만이다. 엄마가 바라는 건 딸의 지극한 관심이나 효심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예의 바르고 형식적으로라도 감사하는 태도이며 안부 인사다. “반찬 잘 먹었어요. 엄마가 사준 냄비 잘 쓰고 있어요.” 그냥 하면 되는데, 엄마를 직장 상사 대하듯 하면 강직하던 성품이 더럽혀지기라도 하는 듯 결벽을 떨었다. 엄마에게 도움을 계속 받다 보면 엄마의 올가미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피해 망상에도 시달렸다.
최근 들어서야 마음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가벼워졌는데, 엄마를 이해해서도, 엄마와 화해해서도 아니었다. 엄마 인생을 어떻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당연하다. 내가 엄마를 어찌 해준단 말인가. 우리 가족이 휴가를 갈 때 언제 끼워줄 거냐며 떠볼 때도, 먼저 안부 전화를 할 때 ‘우리 바쁜 딸이 전화를 다 하네?’라고 은근히 비꼴 때도, 내가 뭔가를 못 해줘 엄마가 저런다는 생각. 그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엄마가 저러는 건 내 탓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 엄마는 피해버리거나 덮어두고 싶은 이야기다.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곱씹어 대고, 울고불고 싸워서라도 해소하려고 했던 예전과 다르게, ‘어이구. 또..또..’ 이러면서 넘어가게 된 단계까지 왔다. 갈등의 기미가 보이면 잽싸게 비위 맞춰주는 척하고 냅다 자리를 피한다. “그러게?” “어..” ‘끄덕끄덕.’...후다닥.
완벽하게 투명하고 깔끔한 관계란 있을 수 없다. 가까운 만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해를 풀어야 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얼마나 물어뜯고 몰아세웠던가. 모녀 관계가 적당한 위선으로 모호하게 덮어진 지금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엄마라니. 어물쩍 덮어둔 걸 다시 파헤쳐야만 하나 싶어 심란해진다. 나는 왜 엄마 이야기를 끄집어내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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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마를 기록한 딸들의 에세이
이 글을 구상한 몇 개월 전부터 한국과 서구의 작가들이 쓴 책을 다시 찾아 읽었다. 딸들이 엄마에 관해 쓴 글들에선 특수하면서 익숙한 정서가 느껴졌다. 딸들은 엄마에게 당한 부분, 엄마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 엄마가 나에게 여자로서, 인생의 롤모델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먼저 보여주지 못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한차례 토해 낸 다음엔 엄마를 연민했다. ‘엄마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예전의 나라면 매우 공감했을 것이다. 엄마도 가부장제의 희생자였어!, 내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어!, 우린 연대해야 해! 라고 외치며. 그런데 나에게 거리감이 생겼다. 동의한다 아니다의 문제라기보다 전처럼 깊게 감정이입하며 읽게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캐롤라인 냅은 <욕구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가족의 식사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는 엄마를 본 적이 없기에, 딸들은 훗날 자기 일을 가질 때에도 엄마처럼 모든 걸 다 해내야 한다는 자아분열에 시달린다고. 어느 글에선 엄마가 자신에게 충분히 주지 못한 정서적 교감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새삼 알았다. 엄마는 자식에게 집중하면 자신을 찾지 않는 엄마가 되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으면 정서를 채워주지 못하는 엄마가 되고야 만다. 책을 읽다 나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당신도 자식 낳아봐. 엄마는 그렇게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야!’
예전에 매우 공감하며 읽었던 레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솔닛이 자신을 엄마의 거울에 비유하며, 언제나 사랑스럽고 옳은 모습의 딸로 비춰주길 바랐지만, 자신은 엄마의 기대에 맞춰줄 수가 없다고 썼을 때, 얼마나 열렬히 위로 받았던가.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가 뜯어져가는 책 같다고 했을 때, 엄마의 불행을 자신이 끌고 갈 썰매라고 했을 때, 솔닛이 가닿고자 했던 이해에 나도 얼마나 가고 싶었던가. 그러나 책을 다시 펼치자, 전엔 보이지 않던 문장들이 들어왔다. 딸을 시기한 엄마, 딸과 경쟁하던 엄마, 남성의 관심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엄마. 자신과 비교되지 않게 똑똑하고 아름답게 자라는 딸을 보며 분열되는 엄마. 사랑과 인정을 주지 않던 엄마의 불행 속에 같이 휘말려 들어간 딸.
전엔 솔닛의 문장에 내 엄마를 갖다 대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속으로 말한다. ‘이 언니도 어지간히 쌓인 게 많네..’ 자신 안의 응어리를 여러 이야기와 교차해 나가는 글에 감탄했지만, 한편으론 그가 그리는 엄마의 모습, 끝없이 타인의 인정에 목매달며 도덕적인 가치 기준에 사로잡힌 모습은 너무나 불행하게만 그려졌다.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은 모녀 사이의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한 대화를 코앞에서 보듯이 실감 나게 재현한다. 이 회고록은 결혼을 낭만화했고, 남편을 잃은 다음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며, 그 불행이 삶의 유일한 의미라도 되는 듯이 흠뻑 취해 살던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다. 엄마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자신만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해야 했다. 고닉에게 엄마의 영향력은 "콧구멍에", "입술에", "숨쉴 때마다 들이마셔졌다. " 그는 "엄마라는 마취제를 들이마시며 고통받는 여성성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썼다.
그렇다면 고닉은 달랐을까. 이 책은 엄마의 이야기만큼 고닉이 만난 남자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사랑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외쳤던 엄마만큼, 고닉도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불안을 해소하려 했다. 차이라면 고닉은 여러 번의 이별을 통해 남자와의 성애에서 얻는 짜릿함 만큼, 무엇을 직시하지 못하는지 알아차렸다. 그래서 고독을 감내하기로 했다는 거다.
이 책은 마지막까지 모녀가 쉽게 화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는 점이 압권이다. 딸의 신랄한 갈굼과 지적질에도 주인공 의식만큼은 버리지 못하는 엄마. 딸이 이해해 주기만을 바란다. 딸이 외로워하자, 엄마가 한다는 말. “너 이제 나에게 동정심이라도 들겠구나?” 그 말에 빡 돌아 사정없이 엄마를 공격하는 딸. 이내 유순해진 나이 든 엄마. 책은 끝난다. 넌더리 나는 비비언 고닉 모녀는 마치 나와 엄마 같았지만, 내 마음에 걸리는 건 평생을 사랑에 목 매인 듯 하게 쓰인 엄마의 모습이다.
우리나라 에세이 중엔, 하재영의 <나에겐 어머니가 없었다>가 있다. 딸이 직접, 오래도록 냉담했던 엄마와 대화를 시도하며 인터뷰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붙였다. 내가 읽기에 희생자 엄마, 피해자 딸이라는 전형적 구도는 여전했지만, 마지막에 엄마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긍정했다는 점에선 한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문체의 영향인지, 엄마의 극도의 차분하고 초연하며 정제된 목소리가 비현실적이었다. 또 1960년대 미국에서 쓰인 <여성성의 신화>와 같은 서구의 사례에 자꾸만 엄마를 맞추려는 글쓴이의 관점이, 오히려 엄마의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듯 보였다.
모두 내가 쓸 수 없는 글들이다. 딸들은 엄마에게 고통받았고 엄마들은 가부장제에서 억압당했다. 엄마들의 억울함, 분노, 시기, 질투는 딸에게 전승되었고, 딸을 지배하려 했다. 영리한 딸들은 그걸 알아보았다. 나만 당할 수 없다, 너도 당해야 한다며 끈덕지게 뻗쳐오는 불행의 손길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끊어내려고 했다. 엄마와 화해를 시도했다. 이 모든 점에 적극 동의했지만, 나의 이야기처럼 공감되지 않았다. 왜였을까.
내가 느낀 불편함과 찝찝함은 그들이 엄마의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서도, 입체적으로 해석하지 못해서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 ‘엄마’라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내 아이는 열 살이 되었고, 비교적 나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나는 딸들이 쓴 글을 읽으며, 언젠가 내 딸도 나를 평가하고 판단할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에 서게 되어버리고야 만 것이다.
그래서 말하고 싶어졌다. 글 쓰는 자식을 둔 죄로 왜 엄마들은 이런 평가를 당해야만 하는 거냐고. 딸이 나를 쓴다면, 내가 엄마의 험담을 잔뜩 썼던 글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할 거라고. “내가 죽은 다음에 써.” 그러나 무덤에서도 왜 편하게 쉬게 두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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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답답함은, 엄마들에게 보이는 극도의 수동성이었다. 왜 그들은 하나같이 남편의 사랑을 갈망하며 살아야만 했을까. 왜 딸을 질투하는가. 왜 자기만의 우울함에 빠진듯이 보이는가. 왜 그토록 무기력하게 보였는가. 딸들에겐 분명 그렇게 읽혔다. 그러나 딸들의 시선 역시 이미 가부장제 속의 여성을 해석하는 전형적인 틀 안에 멈춘 건 아니었을까.
엄마들이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보일 수밖에 없던 조건이 분명히 있었다. 그걸 무시하고 엄마는 우리를 위해 살면서도 행복했을 거로 추측하는 것은 감히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집안에 갇혀 한숨만 내쉬던 모습이 엄마의 삶의 전부인 듯 딸들에게 보이고 기록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만약 내 딸이 나의 삶을 그렇게만 평가한다면 어떨까. 반찬 투정 한다고 혼내던 걸 가족을 위한 요리에 집착한 엄마로, 숙제하라고 몇 마디 한 것을 입시 교육 이데올로기에 찌든 엄마로 본다면 말이다. 억울해서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게 해석될 수 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노트북만 쳐다보며 글을 썼다. 내가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할 여지가 엄마의 삶엔 없어 보였다. 그리고 만들어 둔 간식을 먹으라고 세 번이나 말했다. 엄마는 요리로만 존재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엄마는 아빠가 말할 때마다 시비를 걸고 늘어지곤 하는데, 그때마다 아빠와 살갑게 지내지 못하면서 찾아오는 엄마의 불안이 나에게까지 전해져 와 숨이 막혀오곤 했다. 엄마도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내 딸도 2034년에 이런 글을 쓸지 모른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면서.
글쓰기에선 대상의 어떤 면을 잘라서 보여주느냐가 어쩌면 전부다. 내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사안을 보느냐에 글쓰기가 달려있다. 많은 남성 저자들의 엄마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염치없는 모성 찬양만큼이나, 여성 저자들이 가지는 가련함과 피해자 연대도 어떤 프레임으로 어떤 면을 부각하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완전한 엄마를 바라는 마음이, 엄마의 특정 부분을 확대 해석하게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엄마를 성모 마리아로도,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그리지 않는 글을 찾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딸인 자신을 엄마에게 속수무책 당한 연약한 아이로만 기억하지 않는 글을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