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은 공부를 좋아했다. 4년 내내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고, 장학금을 독식했다. 연락이 안 될 때면 어김없이 도서관을 뒤져야 했다. 공부에 몰두하는 가인은 언제 봐도 멋져 보였다.
하지만 가인이 성생활에 소홀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도서관에서 가장 많은 섹스를 한 학생이 있다면 그건 분명 가인일 것이었다. 가인은 어느 시간대에 사서들이 서고 정리를 하는지를 꿰고 있었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철학이나 고전문학 서고에서 주로 해결했기 때문에 한 번도 들킨 적은 없었다.
섹스를 도서관에서 배워서일까. 가인은 섹스에 있어서도 학문적으로 탐닉했다. 카마 수트라* 원본을 4번 완독했을뿐더러 남자친구와 그 책에 나온 체위를 도장 깨기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가인의 학구열을 감당하지 못해 남자친구가 떨어져 나가면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들어 다음 챕터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열심이던 가인이 결혼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가인은 결혼식 전에 남편 될 사람을 소개해주지 않았다. 보여달라고 졸라대도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결혼식 날 처음 만나게 된 가인의 남편은 그동안 가인이 만나왔던 도서관 섹스남들과 판이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창백한 얼굴에 목이 길고, 팔다리가 가늘어 어느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결혼식에서 보여준 가인 부부의 모습은 생소함을 넘어 신기할 정도였는데 특히 다현이 기억하는 가장 의아했던 장면은 기념사진 촬영 후였다. 결혼식 사진의 대미는 ‘키스해! 키스해!’ 구호 뒤에 이어지는 스킨쉽이고, 혀가 들어갔냐 혹은 몇 바퀴를 굴렸냐 하는 스킨쉽 농도에 따라 환호의 데시벨이 달라지는 법인데 가인의 남편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오랜 시간 뜸 들이다 가인의 머리를 살포시 쥐고 겨우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댔다.
처음엔 걱정스러웠지만 가인은 결혼생활에 충분히 만족하는 듯 보였다. 만날 때마다 온화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에 다현은 가인의 부부생활에 대해 굳이 묻지 않았다.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부부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면 가끔 뜬금없는 얘길 하긴 했었는데, ‘독립적 교감’, ‘개체주의적 사고’, ‘이질과 본질의 접점’과 같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부부관계를 설명했다.
“그 사람의 성기가 다른 개체로 느껴져. 마치 하나의 인격인 것처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성체인 것처럼. 스스로 감정을 가진 것 같기도 해.”
“누가? 성기가?”
“응. 남편 성기가.”
화영은 벌떡 일어나 다른 테이블을 향해 “성기 씨~ 성기 씨~”를 외쳤다. 다행히 카페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먼 테이블에서 고개를 돌리기 전에 늘희가 화영을 주저앉혔기 때문에 성기 씨는 아무도 모르게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이건 어느 행성 얘기야? 남편의 성기가 성욕을 갖춰야지 왜 감정을 가져? 대체 어느 포인트가 그런 거야? 귀두에서 액체를 뚝뚝 흘린다 해서 그건 눈물이 아니요, 불알이 빵빵해진다 해서 삐친 것이 아니거늘!”
가인의 얘길 농담처럼 받는 친구들의 반응에 가인은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너흰 이해 못 해. 절대.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가 더딘 이유가 바로 이거잖아. 꼭 경험을 해봐야 안다는 거. 본인이 경험하지 못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거.”
그러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
해가 기울어 벌써 서쪽 하늘이 붉어지고 있었다. 김오치 연구원이 내민 패드에 재생된 3분 남짓의 짧은 영상은 단조로운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것이 어둑해지는 사위를 울리는 탓에 다현은 조금 으스스해졌다. 잠시 후 화면에 가인과 가인 남편이 나타났다. 단정한 재킷을 입고 정갈히 앉은 두 사람의 표정은 사뭇 경직되어 보였다.
“저희 부부는....”
입을 뗐으나 선뜻 말을 뱉지 못하는 가인을 대신해 남편이 말을 이었다.
“저희 부부는 결혼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섹스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요. 저희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도 많은 분이 그러시겠죠. 이성애를 기반으로 한 주기적인 성교합을 정상으로 믿는 이 세계에서는 아마 이런 관계를 ‘섹스리스’라고 칭할 것입니다. 섹스가 없는 비정상적인 관계, 개선이 필요한 관계, 딱하고 불쌍한 관계.”
가인이 다시 이어받았다.
“저는 수많은 남자와 섹스를 해봤습니다. 아, 동성과의 관계도 적지 않았죠. 스리섬, 스와핑, 섹스배틀. 남녀가 섞인 파티에서 바닥을 굴러다니며 밤마다 타인의 성기를 탐하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를 탐구했습니다. 하지만, 채워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내 몸은 짜릿해지는 동시에 지쳤고, 육체적 쾌감이 올라옴과 동시에 구역질도 올라왔습니다. 충족되는 것이 없었어요. 궁금했습니다. 인간은 왜 이런 행위를 사랑이라 부를까, 왜 이것을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교감인 것처럼 떠들어댈까.”
가인은 남편을 응시했다. 따뜻한 눈빛이 오고 갔다.
“이 모든 의문이 남편을 만나 명쾌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섹스를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섹스는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땐 섹스리스겠죠. 저흰 저희만의 교감 방식에 만족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디다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었죠.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보는 시선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되었어요. 과학적으로! 본질적으로! 저희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섹스가 필요 없는 부부라는 것을요!
이제 저희 부부는 성애 지상주의로 물든 이 세계를 바꿔놓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곳으로 오십시오. 만나서 이야기합니다.”
영상 위에 자막이 떴다. <MSTI 발족식>이라는 타이틀 아래 오늘 날짜가 적혀있었고, 일시와 장소는 ‘떡칠산 돌쇠바위 앞’이었다.
파리처럼 손을 비비적대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김오치가 조급한 티를 냈다.
“이제 알겠죠? 지금 올라가서 맞닥뜨릴 상황에 내 책임은 없어요. 난 오히려 가인 씨 부부를 도우러 가는 거라고요. 아니, 가인 씨 부부뿐 아니라 거기 모인 모두를 살리려고 하는 겁니다!”
“당신 책임이 전혀 없다고? 당신은 당신 연구에 떳떳하지 못하군요. 가인은 리스연구소에 다녀온 후로 뭔가를 알아낸 것처럼 말했어요. 이 영상을 보니 가인뿐 아니라 남편도 관련된 것 같군요. 가인의 남편이 연구소에 갔었나요?”
김오치의 미소. 어딘가 썩은 구정물 냄새가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흐음. 어차피 집회 장소까지 가려면 좀 걸어야 하니 가면서 얘기하죠.”
김오치는 마치 해마 깊숙이 저장된 옛 기억을 꺼내 올리듯 천천히 이야길 시작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관련 연구가 뒷받침되어 있으니 궁금하시면 리스(RISS**)나 구글 스칼라에서 ‘아메바드조루’를 검색해보세요. 전 세계 석학들의 수많은 연구자료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아메바를 발견한 한 과학자에서 시작됩니다. 어느 날, 호수의 물을 떠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특이하게 생긴 원생생물을 발견합니다. 평소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그는 이 원생생물의 번식형태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에 돌입하죠.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지친 과학자는 망연자실해 원생생물을 바라보았지요. 그의 앞에는 동글동글한 모양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놈과 길쭉한 막대 아래 두 개의 방울이 달린 것처럼 보이는 놈이 나란히 있었답니다. 과학자는 둘을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함 해 봐!
과학자는 홀린 듯이 연거푸 외쳐댔습니다. 함 해 봐, 함 해봐, 함해바, 암애바, 아메바!
그렇게 해서 과학자는 이 원생생물의 이름을 아메바로 붙였다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제부터입니다!
자, 생각해보세요. 무성생식을 하는 이 생물에게 인간종의 잣대를 들이대며, 함 해보라니요! 얼마나 어이없는 일입니까? 얼떨결에 멍청한 이름을 갖게 된 아메바는 인간에 대한 복수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이건 제 추측입니다. 아메바가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는 검증된 바 없으니까요.) 이 복수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다원론적이고 가장 해체주의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아메바는 과학자의 생식세포에 잠입해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독보적인 능력, 바로 무성생식력을 과학자에게 감염시키고 맙니다!
다현은 지금까지의 얘기에서 가인 부부와의 어떠한 연결고리도 추측할 수 없었다.
“저기요, 김오치 씨. 기다리기가 힘드네요. 그런 병맛 과학사가 이 일과 무슨 상관인가요?”
“다현 씨는 인내심이 부족하군요. 그 점은 치료설계에 참고하겠습니다. 다행히 이제 본론입니다.”
가인 씨의 기억을 더듬어본 결과 두 사람의 성생활은 독특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성생활이라고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독특했습니다. 그 부부는 “오늘 할까?”라고 묻고는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쓰다듬으며 호흡을 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특이한 점은 옷을 입은 상태에서였다는 것이죠. 그것은 마치 서로의 몸을 발가벗기지 않고도 서로의 알맹이를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습니다.
상대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느낌이었어요. 어떤 날은 좀 격렬한 움직임이 있기도 했는데 그게 뭐랄까... 마사지 같기도 하고 어떤 요가 동작 같기도 한 여러 제스쳐들을 섞어가며 각자 릴렉스하는 느낌도 받았고요. 재미있는 사실은 그 과정에서 둘은 끊임없이 대화를 했고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화는 일상적이었지만 평소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주 내밀한 고해성사? 혹은 혼자 써 내려가는 일기 같은?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저는 이 부분이 유독 인상적이었어요.
둘은 아주 많이 웃었습니다. 부부의 침실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다현은 가인 부부의 섹스를 상상함과 동시에, 자신과 남편의 섹스도 같이 떠올렸다. 섹스하며, 혹은 섹스 후에 같이 웃어본 게 언제인가. 침실에서 서로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해본 기억조차 까마득했다. 가인 부부의 움직임이 온전히 그려지진 않았지만, 절정을 갈구하거나 탐닉하는 행위가 아니라 존중을 담은 터치와 웃음으로 귀결되는 그들의 교감이, 다현은 부러웠다.
저희는 두 사람의 생식세포를 어렵게 기증받았습니다. 그런데 가인 씨의 난자와 무성 씨의 정자는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기관을 하나 더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포소기관의 역할을 찾아내는 데 연구소의 인프라를 총동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기관의 구조가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한 아메바와 동일한 염기서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해 냅니다. 바로 앞서 얘기한, 과학자의 몸에 잠입한 바로 그 놈, ‘아메바드조루’였던 것입니다.
네. 아마 다현 씨가 예상한 것이 맞을 겁니다. 이곳이 그 아메바의 화석이 든 호박을 발견한 바로 그곳이죠. 아메바드조루 옆에는 한 인간의 뼛조각 화석도 발견되었는데, 학계에서는 그 과학자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산의 이름이 떡칠산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한평생 떡 한 번 제대로 쳐보지 못한 인간이 여기에 묻혀있다는 게, 좀 잔인하달까요?
다현은 걸음을 멈췄다. 경사가 심한 산길을 오르며 헐떡거리던 숨도 멈췄다.
“지금 가인이 무성애자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무성애자와는 엄연히 다르죠. 가인 씨와 무성 씨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그것을 DNA로 증명한 커플이니까요!”
가인 부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에게 성욕을 갖는 것은 동일하나, 사랑을 표현하고 성욕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필수라고 여기는 섹스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니요! 가인은 알아주는 도서관 섹순이였어요.”
“아마도 가인 씨 본인의 성 정체성을 알아보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럴 수가... 말도 안 돼요.”
“그렇죠?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좋은 걸 하다가 안 하다니! 그것도 DNA가 문제였다니! 다현 씨, 그래서 그들에게는 제가 필요합니다. 원인을 밝혀냈으니 치료제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이제 리스연구소에서 치료받을 일만 남았어요. 이로써 리스연구소의 존재가치를, 위대한 섹스학의 업적을 증명해낼 수 있게 됐다는 말입니다!”
김오치는 어느 때보다도 격앙되어 있었다. 이 세상에서 섹스리스를 모두 없애 노벨의학상이라도 타보겠다는 것인가. 타이트한 미디스커트에 급히 빌려 신은 스니커즈의 부조화처럼 김오치의 탐욕은 어긋나 보였다. 다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그런 큰일을 겪으면서 가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현은 가인이 외계인이라 해도 둘 사이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김오치를 끌고 다시 길을 올랐다.
**
중턱에 다다르자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캠핑용 조명으로 추측되는 여러 색의 빛이 두서없이 반짝였다. 서서히 다가가며 어른거리는 실루엣 속에서 가인을 찾았다. 백여 명쯤 돼 보이는 무리는 남과 여의 비율이 거의 비슷해 보였고, 교복을 입은 학생부터 중절모를 멋지게 눌러 쓴 노신사까지 노와 소의 비율도 조화로웠다.
무대의 정 가운데 <MSTI 발족식>이라는 현수막 아래 가인과 남편이 우뚝 서 있었다. 에스닉마이노리티 리포트 유튜브 채널 운영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회자가 가인 부부를 소개하는 중이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가인의 상기된 얼굴이 다현에겐 익숙했다. 가인은 어쩐지 독파해야 할 책 리스트를 손에 쥐고 도서관에 들어갈 때의 다부진 표정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섹스, 꼭 해야 하나요? 안 하면 죽나요? 아니면 어디가 아파오나요?”
무리에서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대체로 고개를 가로 젓거나 어깨를 들썩 하며 작게 호응했다.
“어떻던가요, 무성 씨?”
모두의 시선이 남편 쪽으로 향했다. 원체 하얀 얼굴이 더 하얘졌다.
“글쎄요... 제가 알러지가 좀 있긴 한데.... 그게 섹스와 상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성 씨는 섹스 없는 인생이 행복한가요?”
“때로는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섹스와 관련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섹스를 하지 않으면 ‘네가 아직 그 맛을 몰라서 그래’ 아니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냐?’, 이런 식으로 반응할까요?”
두 사람은 오래 손발을 맞춰온 만담 콤비처럼 Q와 A를 주고받았다.
“그건 아마도 ‘정상’의 기준을 하나로만 정해 놓아서 그렇지 않을까요? ‘섹스는 남녀 사이에 사랑을 확인하는 필수요소니까 사랑한다면 꼭 섹스해야 해, 남자와 여자, 이성끼리 1:1로만 해야 해, 가족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평생 한 명의 배우자와 해야 해. 무엇보다 섹스는 계속되어야지, 마치 24시간 돌아가는 냉장고처럼 부부 사이에 섹슈얼 감도는 항상 ON으로 유지되어야 해, 주기적으로 해야 함은 물론이고, 매번 사랑을 담아 정성스럽게 하는 게 정상이야.’ 같은.”
“그런 하나의 기준이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들죠. 남들은 한 달에 한 번은 한다는데 우린 안 그러네? 이상한 건가? 문제가 있는 건가?
우리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데에는 여러 이권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습니다. 모두 한통속이 되어 섹스 권하는 사회를 만들고 있어요. 그 첫 번째는 정상 가족 제도 안에서 출산을 통해 인적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하는 국가시스템입니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더 자야 임신의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두 번째는 의료계 종사자들입니다. 이들은 문제가 아닌 증상을 문제 시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 문제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수천 년 동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겨왔던 완경이나 노화가 이제는 질병 시 되고 의사의 제안대로 치료제를 받아먹거나 고가의 시술을 받게 되었잖아요? ‘섹스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아요. 어떤 사람은 국수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담배를 좋아하는 것처럼 섹스하지 않는 것이 누구에게는 좋고 싫음의 기호이거나,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는데 말이죠.”
“‘섹스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몸의 부응이요, 기호의 차이이며, 자유의지를 가진 개인의 선택 결과입니다.”
“게다가 저희 부부를 통해 입증된 DNA 차이이기도 하죠.”
그때 청중 안에서 ‘와!’ 하는 함성이 커졌다. 맨 뒷줄에 있던 다현은 마치 몰래 엿듣고 있던 사람처럼 화들짝 소스라쳤다. 반면 김오치는 놀란 기색이 없었다. 기다렸던 순간을 마주한 사람처럼 긴장돼 보였다.
“여러분은 이미 채널을 통해 보고 오셨습니다. 섹스가 필요 없는 DNA, 그것이 현존한다는 것을요! 맞습니다! 우리는 단지, 섹스하지 않아도 행복한 몸을 가졌을 뿐, 비정상도 아니고 환자도 아닙니다!”
와, 하는 함성이 깊어가는 밤의 고요를 흔들었다.
축제의 분위기로 물들어가는 순간, 다현은 옆에 김오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김오치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들어가 뭔가를 나눠주고 있었다.
“제가 바로 섹스리스 DNA를 발견한 그 연구원입니다. 연락주시면 신속한 검사가 가능합니다. 일단 검사비용의 10%를 계약금으로 입금해주시면 바로 신청 완료되고요, 계좌번호는 명함 뒤에...”
사람들 손에 들린 것은 김오치의 명함과 연구소 로고가 박힌 콘돔이었다. 다현은 그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내고 싶었지만 기계적인 동작과 멘트를 무한 반복하며 이미 저만치 나아간 터라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오치는 백여 명의 무리를 반으로 가르며 거의 무대 앞까지 나아갔다. 김오치가 다가오는 걸 가인이 알아챘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왔죠? 당신과 상관없는 일일 텐데요.”
“상관이 없다니요,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여기 모인 분들을 전부 구원할 힘이 저희한테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요.”
김오치는 무대로 성큼 올라가 가인의 손에서 마이크를 뺏어 들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리스연구소의 수석연구원 김오치입니다.”
김오치가 박수를 유도하는 동작을 해보지만 호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섹스리스 DNA에 대해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하실 텐데, 제가 오늘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을 갖고 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여기 모이신 섹스리스 분들, 주목하십시오! 그동안 얼마나 숨고 싶으셨습니까? 무지와 무능이라는 오욕의 굴레에서 고통받으셨던 여러분께 마침내 발전 가능성을, 아니 발정 가능성을 제시해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밤에도 리스연구소의 직원들은 야근을 불사하며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섹스리스 DNA를 싹둑 잘라내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일단 리스연구소에 회원가입 먼저 하세요. 따따따쩜,알이에스에스....”
그때 입을 다물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김오치의 얼굴로 계란이 날아들었고 터진 날계란의 끈적한 점액이 김오치의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군중의 한 사람이 소리쳤다.
“맛있냐? 날계란이 정액 맛하고 비슷하다며? 그 좋은 거 너나 많이 먹어라!”
김오치가 익숙한 맛이라는 듯 쩝쩝거리자 군중 속에서 또 한 번 큰 소리가 울렸다.
“페르베르티***!”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나 왠지 환호라고 느낀 김오치가 감사하다는 손짓을 했다. 군중을 헤집고 한 여자가 튀어나와 김오치의 마이크를 뺏어 들었다.
“저는 당신의 그 치료가 필요 없습니다. 제 몸 안에 어떤 DNA가 있든, 전 지금 제 생활에 만족합니다. 남편과의 잠자리는 저에게 외로움만 주었어요. 하지만 우리 따냥이를 만나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어요. 저는 사랑의 대상이 꼭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환호가 군중 속에서 터져 나왔다. 마이크가 사람들 속을 누비며 여러 목소리를 담았다. 이성애 섹스에서 일방적인 폭력을 겪었지만 동성끼리 살면서 손만 잡고 자도 행복감이 차오르는 경험을 전해주는가 하면, 이성과 애써 오르가슴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던 걸 중단하고 혼자 피아노를 치며 그와 맞먹는 쾌감을 느껴본 적 있다는 우아한 발언까지. 김오치의 손을 떠난 마이크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채 다시 가인의 손에 도착했다.
김오치를 끌어내리기 위해 다현이 무대에 올랐다. 가인의 눈빛이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도 선명하게 빛났기 때문일까. 쉽게 나서지 못하는 성격임에도 가인을 도와주고 싶었다. 괴력을 뿜으며 버티려는 김오치를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끌어내렸다. 할 말이 더 있다며 다시 올라가려는 김오치의 양쪽 팔을 건장한 청년 두 명이 힘껏 뒤로 꺾었다. 맥없이 주저앉는 김오치의 미디스커트가 엉망이 되었다. 보아하니 김오치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고객으로 포섭할 생각이었다. 명함까지 두둑이 챙겨오다니, 치밀하고 치졸하다.
하지만 다현은 안심했다. 이들 모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듯했고 가인 부부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김오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의외로 무심했다. 경멸, 비난, 원망 그 어떤 것도 엿볼 수 없었다. 김오치가 한 어떤 회유도 그들에겐 상관없는 일이며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는 사실만을 다현은 읽어냈다.
가인은 발언을 계속했다.
“우리는 성격이 제각각 다르죠? 저는 ISTJ이고, 남편은 INFP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자신의 MBTI 유형을 알고 계실 거에요.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인간의 성격을 16개의 유형으로 세분화했습니다.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 소통하는 데에 이 MBTI를 아주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죠. 그 기반에는 ‘사람의 성격은 제각각 다르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고요.
그렇다면 성적 차이는요? 우리는 성격 차이는 인정하면서 왜 성적 차이는 인정하지 않죠? 세상엔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성 지향점이 존재합니다. I,N,F,P와 E,S,T,J가 아무리 양극단이어도 누군 정상이고 누군 비정상이라는 식의 차등을 두지 않듯이 성적 차이도 그 다름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성 지향성을 똑같이 존중해야 해요.
저희 부부는 오늘 MSTI-Miscellaneous(다양하게 섞인) Sex Type Indicator-를 주창합니다. 성에 눈뜨고 수십 명의 남녀와 관계를 가져오면서 생긴 질문, 그리고 이 남자를 만나 섹스리스 또한 하나의 정체성임을 체험하고 연구해 온 모든 것들을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 나누고 증명해 나가보려 합니다. 여러분, 저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엄청난 환호가 메아리쳤다. 두서없이 박수를 치고 흥얼거리던 사람들이 어느샌가 하나가 되어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달빛이 희열하는 이들의 머리 위를 부드럽게 감쌌다.
**
새벽 어스름을 뚫고 해가 나올 때쯤 집회가 끝났다. 신념을 나눈 사람끼리는 시간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참가자들은 처음 본 사람과도 거리낌 없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술잔을 나누며 취기 어린 춤을 추었다. 하늘이 코발트블루 빛깔로 서서히 밝아져 갈 즈음, 하나둘 짐을 챙겨 자리를 떴다. 줄지어 빠져나가는 행렬을 뒤로하고 다현은 가인의 손을 맞잡았다.
“미리 얘기 못 해서 미안해. 결론이 나면 다 공유하려고 했는데.”
“내가 더 미안하지. 옆에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혼자서 맘고생 했을 생각하니….”
“아니야, 고생은. 난 지금 너무 후련해. 앞으로 어떻게 할지 완벽한 청사진이 그려져.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무엇을 밟고 가야 할지.”
“밟고 간다고? 역시. 가인이 넌, 학자가 아니라 투사였어.”
다현은 그 길과 길 위에 있는 ‘무엇’이 궁금했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가인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그게 무슨 일이든 응원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거니까.
행사 주최자들과 정리를 끝내고 내려오겠다는 가인과 인사하고, 바위에 기대 졸고 있는 김오치를 깨워 산길을 내려왔다. 화영과 늘희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밤눈 어두운 화영이 운전대를 잡아서인지 두 번을 엉뚱한 길로 빠졌다고 했고, 도착했을 땐 너무 어두워 올라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해장국집이 보였다. 긴긴밤을 보낸 친구들은 쫓아 들어오는 김오치를 말릴 여력도 없이 다 같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선지해장국에서 매콤한 김이 올라왔다. 깍두기와 김치에 고추 색이 예쁘게 물들어 금세 침이 고였다.
김오치가 국물 위로 빼꼼 머리를 내민 선지를 한 숟가락 크게 뜨며 말했다.
“이놈 아주 단단해졌구먼!”
김오치는 선지와 그것의 연관성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하며 본인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더욱 공고히 했다. 물컹한 젤리 같던 선지가 뜨거운 열을 받아 단단해지듯이, 남편의 그것을 더 단단해지게 하기 위해선 적당한 자극이 필요하다, 곧 출시될 리스연구소의 신상품 ‘훈증발기’를 남편의 고환 아래 부착하면 다량의 혈액이 음경해면체 속으로 유입되어 그것이 더욱 단단해진다, 체험단 모집 중인데 한 번 해보겠느냐. 수저 위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선지를 한입 가득 밀어 넣는 김오치에게 다현은 너나 많이 드시라고 말했다.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살 것 같았다. 그제야 입이 풀리며 두 친구에게 지난 새벽의 일을 얘기할 수 있었다.
“정말? 가인이가 내추럴본 섹스리스라고?”
화영과 늘희도 역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여전히 리스연구소에 신뢰를 갖고 있는 둘은 가인을 설득해 치료받게 하자고 했고, 김오치는 음흉한 미소로 국물을 깨작깨작 떠넣었다. 놀이요, 운동이요, 삶의 기쁨인 섹스. 세상에 그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을 이해시키는 데 시간과 공을 꽤 많이 들여야 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다현은 언젠가 이들도 이해할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가인이 바쁜 일 끝나면 넷이 또 뭉치자.”
“그래. 그동안 쌓인 얘기가 또 한 보따리다!”
식당 앞에서 헤어지기로 하고 인사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화영이 물었다.
“근데 다현아, 너 정말 리스연구소 맞춤 처방 안 받을 거야?”
“어. 난 안 하려고. 저 김오치 연구원 꼴 보기 싫어서라도 안 할 거야.”
먼저 가래도 가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눈치만 보는 김오치를 흘긋 보다 다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왜? 난 괜찮던데. 싹싹하고 똑똑하잖아. 오지랖이 좀 심하긴 하지만.”
“그 오지랖이 문제야. 난 어떤 처방도 필요 없고, 지금이 좋다고 해도 자꾸 귀찮게 하잖아. 내 기억 속에 살고 있다는 그....”
또 그 사람이 스쳤다.
“왜? 말하다 말아?”
“아, 아니야. 그냥, 이제 다 잊고 싶어. 연구소고 뭐고, 없었던 일로 하고 살 거야.”
화영의 차가 빠지는 걸 지켜본 후 차에 타려는데 저만치서 김오치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애써 외면하려는 다현을 아랑곳하지 않고 김오치가 말했다.
“다현 씨는 지금 욕구로 가득 차 있어요. 그만큼 불만도 차올랐고요. 전 오늘 회사로 돌아가서 안드로이드 팀에 지시서를 내릴 예정입니다. 지시서의 제목은, 엑스맨. 의뢰인은, 조다현.”
대체 뭘 제공하겠다는 걸까. 분명 아무것도 필요 없다 했는데. 김오치의 삐뚤어진 욕망과 과도한 자신감이 숨 막혔다. 다현은 휴대폰을 켜고 연락처에서 ‘김오치’를 찾아 수신 차단 버튼을 터치했다. 휴대폰 화면이 김오치에게 충분히 보일 수 있도록 밖으로 향하게 한 후 천천히 차창을 끌어올렸다. 거절의 의사는 이전에도, 지금도 충분히 했다. 볼 일도, 연락할 일도 이제 없다.
다현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액셀을 밟았다. 사이드미러에 김오치의 잔상이 점점 작아졌다.
다다음주 수요일(11월22일),
4화에서 계속...
* 카마 수트라 : 밧샤야나(Vātsyāyana)가 쓴 산스크리트어 문학작품으로, 고대 인도의 힌두교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고려되었던 성적 습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분은 성관계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카마 수트라는 성관계 시 할 수 있는 각종 체위 등을 적어낸 지침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 RISS : Research Information Sharing Service, RISS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에서 제공하는 국내 최대 학술정보제공서비스
*** perverti. 프랑스어로 ‘성도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