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현듯 가슴에서 뜨거운 압력이 느껴지면서 그 기운이 순식간에 머리까지 올라왔지요. 그것은 ‘화’였습니다.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걸 알아차렸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짧은 시간에 연쇄적으로 알아차림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놀라웠지요. 덕분에 화는 조금 누그러들었지만, 여전히 식지 않고 잔잔한 열기를 띤 채 머리와 가슴 속에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화는 가슴에서부터 느껴졌지만, 그것이 곧 화가 그 순간에 가슴에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가슴에서 발각되었달까요? 더 일찍부터 내면 어딘가에서 시작되었고, 줄곧 몰두하고 있었으면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가 되자 알아차린 거지요. 화를 내지 않고 알아차린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다혈질에 억울한 걸 못 참는 저에게 평생 화라는 건 억지로 꾹꾹 눌러 참거나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그런데 화를 바라본다는 새로운 길이 나타난 거예요.
이 특별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어요. 마음의 시선으로 화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꼭 붙잡았지요. 화를 주시하면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설거지하는 내내 한 친구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화는 바로 그 친구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된 거였어요. 나는 친구가 나에게 뭘 잘못했는지를 낱낱이 그리고 소상히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죄상이 드러날 때마다 화의 압력이 조금씩 더 거세지고, 머리와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너무 화가 날 만한 일이었고, 여태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기가 막혔습니다.
나의 30년 지기라는 그 애는 나에게 모욕을 주었고, 나를 무시했으며, 나를 무수리처럼 부리려고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나를 웃음거리가 되게 만들었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해서 결국 나는 큰소리로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렇게 나는 화를 놓쳤습니다. 마음의 시선으로 화를 붙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의식은 친구의 잘못을 따지는 생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고, 생각들이 더해지면서 화도 커졌고, 결국 늘 하던 대로 화를 표출한 거지요.
생각과 감정의 작동 패턴
소리를 지른 순간 내가 소리를 질렀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러자 속이 시원하지도, 개운하지도 않았습니다. 집에는 나 혼자뿐이어서 다행이었지요. 머리가 멍해지면서 ‘이게 다 뭐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설거지하다 말고 갑자기 맹렬하게 화를 폭발한 내가 낯설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동시에 이게 늘 내가 화를 표출하는 방식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을 곱씹다가 화를 내곤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내 생각과 감정의 작동 패턴이 포착된 이 순간은 저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주시했던 경험, 그걸 계기로 내 생각과 감정의 작동 패턴을 발견한 것은 앞으로 내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어요. 발견된 패턴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었지요. 설거지하다가 갑자기 화를 폭발하게 된 일련의 과정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이 모든 게 다 친구 탓이라고 생각하고 속상해하며 넘어갔겠지만,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었어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친구가 미운 마음과 별개로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내 앞에 놓인 연구과제는 내 마음에 관한 것으로 무척 흥미로웠고, 이런 기회가 생긴 건 그동안 꾸준히 명상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호흡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만들어 낸 결과였어요. 이제는 자리 잡고 앉아서 눈을 감지 않아도 그냥 일상에서도 알아차림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감동적이었습니다.
미움에 관하여
그림책 <미움>은 학교에서 친구로부터 난데없이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을 들은 주인공 아이가 미움의 감정을 겪어내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폭탄처럼 던져진 그 말을 듣고 아이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 독한 말을 내뱉은 친구의 얼굴이 시뻘겋고 빵빵하게 달아올라 있어서 정말 폭탄처럼 보여요. 이내 아이는 자기도 그 친구를 미워하기로 결심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미워합니다. 아이의 목에 친구의 얼굴이 생선 가시처럼 걸려있어요.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이 계속 들립니다. 그래서 숙제하면서도 미워하고, 신나게 배드민턴을 치면서도 미워합니다. 날아오는 공이 그 친구의 얼굴처럼 보여서 세차게 때리지요. 목욕하면서도 미워하고, 잠을 자면서도 미워합니다. 꼴도 보기 싫다는 소화되지 않는 그 말을 곱씹는 동안 미움은 더욱 커져만 가지요. 마침내 아이는 미움이라는 붉은 감옥에 갇히고 말아요.
아이는 미움이라는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에 빠져 정처 없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미워하는데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다며 이상하다고 하지요. 아이는 예전에, 팔에 부스럼이 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립니다. 가려워서 긁었더니 부스럼이 더 심해졌지요.
그때 엄마가 가만히 두면 낫는다고 하셨거든요. 아이는 혹시 미움도 그렇게 가만히 기다리면 사라지지 않을까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깨닫지요. 미워하는 마음은 이상하다는 걸.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로워하는 거니까요. 마치 스스로 발목에다 무거운 추가 달린 족쇄를 매다는 것 같달까요?
결국, 아이는 친구를 미워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 못된 말도, 그런 말을 한 친구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자유로워지기로 하지요. 사람의 마음속에서 미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보여준 작품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설거지하는 동안 저도 똑같았거든요. 친구가 했던 말들과 행동을 하염없이 곱씹으면서 미움을 키웠지요.
그림책에서 아이는 미움에 사로잡혀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그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합니다. 미워하느라 밥맛도 못 느끼며 식사하고, 좋아하는 배드민턴을 치면서도 즐기지 못하지요. 남을 미워하는데 나의 손해만 더 커집니다.
미움의 진짜 원인
미움에 사로잡히는 과정과 결과는 분명해졌지만 그래도 질문이 남았습니다. 설거지하다가 왜 갑자기 친구가 했던 서운한 말과 행동을 생각하게 된 건지도 의아했고, 나아가 친구의 말과 행동이 정말로 화날만한 일이었는지도 의심스러웠지요. 아까는 친구의 잘못이 매우 명백했는데 갑자기 확신이 사라진 거예요.
혼란스럽더군요. 단순히 그 친구가 나에게 잘못했고, 나는 그것을 곱씹다가 화가 터지고 말았고,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걸 알고 잘못을 계속 곱씹으며 미움을 키우지 않도록 하자며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저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자리에 앉아 명상하기 시작했어요. 들숨과 날숨의 반복 속에 나의 몸이 점점 이완되고 편안해졌지요. 그러자 내가 설거지하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껴졌어요. 나는 설거지하는 게 싫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순 없잖아요. 누구나 밥을 먹으면 설거지하는 게 당연합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싫다고 투덜댈 수는 없지요. 그런 불평은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따라서 그 싫은 마음은 숨겨져야 했어요. 나는 그 싫은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친구를 내 마음의 재판장으로 소환한 거였어요.
그 친구가 나한테 잘못한 건 너무 명백해서 화를 내는 게 정당하게 느껴졌지요. 마음껏 화를 내도 괜찮았어요. 즉 나는 설거지하기 싫은 감정을 친구에게 투사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깨닫자 소름이 돋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눈을 떠버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또 깨달았어요. 친구의 말과 행동에 내가 자의적인 해석을 계속 덧붙이면서 잘못을 확대했고, 그렇게 점점 더 그 애를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말이지요. 이제 이것은 더 이상 친구와 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나만의 문제였어요.
여전히 내 마음은 친구가 나를 모욕했고, 무시했고, 무수리처럼 대했다고 그래서 내가 미워하고 화낸 거라고 우기고 있었지만, 그 주장은 이미 힘을 많이 잃어버린 상태였어요. 친구가 정말 그랬다 하더라도 과장이 심하게 들어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무엇보다 내가 설거지할 때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친구였지만 저번에는 엄마였고, 그전에는 이모였고, 또 한번은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었고, 기타 등등. 여태까지 난 이들이 잘못했기에 내가 미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설거지하기 싫은 마음이 이들을 나에게 기소했고, 그에 따라 난 그들의 죄상을 물고 늘어지며 실컷 미워한 거지요.
정말 충격적인 발견이었습니다. 삶에서 설거지가 본격적인 나의 일이 된 지난 십여 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내 마음도 잘 모르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마음의 정교한 자기기만 수법에 절로 감탄이 터졌습니다. 설거지하는 걸 싫어하는 나쁜/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데서 비롯된 화를 표출하기 위해, 미워해도 되는 사람들을 이용한 거지요. 미움의 대상은 사실 누구라도 상관없는 거였어요.
문득, 이런 식으로 내가 나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타난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그 뒤로 하기 싫다고 느껴지면 설거지하다가도 바로 멈추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밉지 않더군요. 괜히 미움을 키우면서 손절할 생각을 하는 습관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누가 미울 때마다 알아차리고 혹시 또 다른 일 때문에 지금, 이 순간 굳이 이 사람을 미워하는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러자 미움에 빠지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