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발신] 조다현 회원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과 내용은 진료 예약 후 연구소에 방문하시면 자세히 들으실 수 있습니다.
예약문의 : 02-123-4567
이주 후 리스연구소에서 온 것은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안내멘트뿐이었고, 내용은 연구소로 방문해야만 알 수 있었다. 다현 부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려면 또 한 번 그곳에 가야만 했다. 그래서 다현은 아무것도 궁금해하지 않기로 하고 문자메시지를 삭제해버렸다.
연구소에 다녀온 후 남편을 마주할 때마다 죄책감이 일었다. 마지막 질문이 불러온 까마득한 옛 기억이 종종 꿈에 나타났다. 그와 흠뻑 젖은 몸으로 후희를 나누다 꿈에서 깨고는, 잠든 남편을 바로 볼 수가 없어 등을 돌려 잠을 청하곤 했다. 원망스러웠다. 리스연구소로 다현을 이끌고 간 친구들이 미웠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에 자신을 내맡긴 대책 없는 호기심이 한심스러웠다.
친구들과 애써 연락을 하려 하지 않았다. 단톡방에 늘어가는 숫자는 보지 않으려 애썼고, 인스타그램에 들어가는 횟수도 확 줄었다. 늘희와 가인의 검사 결과가 어떤지,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의향이 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궁금증마저도 다현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모르는 척, 없었던 일인 척 자연스럽게 그렇게 지나가길 다현은 바랐다.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현의 친구들은 매사에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다현아, 나 좀 도와줘. 정말 너밖에 없어. 부탁한다. 제발!”
늘희였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고, 텍스트뿐인 문자에서도 조급함이 느껴졌다. 다현은 전화했다. 예상대로 늘희는 결과를 들으러 그곳에 다녀왔다고 했다. 처방까지 받았다. 늘희는 며칠을 고민하다 그것을 실행해보기로 결심이 섰고 그걸 하기 위해서는 다현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늘희의 고민을 다현도 잘 알고 있었다. 모임 때마다 부부관계를 화두로 꺼내는 건 화영이었지만 가장 많은 얘기를 하는 건 늘희였다. 늘희는 늘어가는 몸무게와 늘어지는 피부 탄력 때문에 남편과 섹스하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너도 잘 알지. 클럽에서 신랑 만나고 원나잇으로 한 큐에 사귀기 시작한 거. 그때 나도 우리 신랑 벗은 몸 보고 반했지만 신랑도 내 몸이 딱 자기 이상형이어서, 그래서 나를 좋아하기 시작한 거였거든. 근데 애 낳고 살이 붙기 시작하더니 정말 주체할 수 없이 찌는 거야.
나도 내 몸 보기 싫은데 신랑은 오죽할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잠자리를 거부하게 되더라. 신랑 손이 만지는 게 이 물컹한 뱃살, 등살, 엉덩잇살, 허벅지살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해. 나를 만지는 게 아니라 정육점 고깃덩이를 주무른다고 느끼면 어떡하나 싶고...
물론 신랑은 그렇게 말 안 하지. 괜찮다, 아직 예쁘다 하기는 해. 살 주무르면서 귀엽다고도 하고. 근데 그 말을 못 믿겠어. 성관계 횟수가 확연히 줄었고 전처럼 신랑이 적극적이지 않거든. 그리고 전에는 불을 켜고 하는 걸 좋아했는데 요즘은 불을 끄더라. 그게 무슨 의미겠어. 보기 싫다는 거지.
상담해봐야 노력하라고밖에 더하겠나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큰맘 먹고 리스연구소 간 거였어. 그런데 리스연구소가 확실히 다르긴 하더라. 말도 안 하고 기억 떠올리는 거로 내 고민을 완벽하게 파악했더라고.”
“그래서 그 맞춤 처방이라는 게 뭔데? 내가 뭘 도와줄 수 있는 거야?”
다현은 본론이 궁금했다.
“너희 부부를 우리 집으로 초대할 거야. 그날 그냥 기분 좋게 마셔 줘. 우리 신랑 완전히 곯아떨어지면 그때 작전 시작이야.”
늘희가 다현에게 부탁한 이유는 잘 안다. 늘희의 남편이 다현 부부와의 만남에는 특히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화영은 말을 자꾸 잘라먹고, 가인은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논리 들이밀어서 부담스러운데 다현은 불편한 게 딱히 없단다. 그도 그럴것이 다현은 어느 무리에서건 튀지 않는 편이고 다현의 남편은 말수가 적어 주로 들어주는 편이니 혼자 떠들기 좋아하는 늘희 남편이 다현 부부를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곯아떨어지면 뭘 할 건데?”
“눈에 뭘 넣어야 해. 남편 잘 때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네가 옆에 좀 있어주라. 응?”
그날이 되었다.
다현 부부 앞에는 다현이 좋아하는 회와 다현 남편이 좋아하는 장어가 한 상 차려져 있었다. 늘희의 초대에 함께 가자고 말했을 때 여러 사람 모이는 자리를 꺼리는 남편은 즉답을 피했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늘희가 직접 전화를 해 자연산 민물장어와 수정방 52도를 준비했다고 하자 그제야 남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늘희는 아예 하룻밤을 자고 가라고 작은 방에 침구까지 준비해둔 터였다. 두 집의 아이들도 오랜만의 만남이 반가운지 보자마자 돌고래 소리를 냈다.
밤은 깊어가고 수정방은 남편들이 모두 비웠다. 졸린 눈을 끔뻑거리던 다현의 남편이 먼저 곯아떨어졌고, 생각보다 약하시다며 너스레를 떨던 늘희의 남편도 테이블에 고개를 떨구었을 때 다현과 늘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시작이다!
다현의 남편을 작은 방으로 옮기고 늘희 남편을 안방 침대로 옮겼다. 늘희가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는 투명한 원형 물체 한 쌍이 놓여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렌즈 같았다.
“이게 그거야? AR 렌즈?”
“응. 이걸 끼면 나를 볼 때만 필터가 작동한대. 필터 종류는 내가 설정할 수 있고.”
늘희가 다른 쪽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소형 리모컨이었다. 그 위에는 블러, 다이어트, 메이크업 등 다양한 기능들이 적혀있었다. 시야를 흐리게 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낼 수도 있고, 피사체를 늘씬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으며, 맨얼굴이 민망한 날엔 화장한 것처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현은 조심스럽게 늘희 남편의 눈꺼풀을 잡아 올렸다. 갑작스러운 빛 반사에 눈동자가 흔들려 덜컥 겁이 났지만 잠을 깬 건 아니었다. 늘희는 검은 눈동자로 렌즈를 슬쩍 밀어 넣었다. 눈에 닿자 렌즈가 녹듯이 스며들었다. 반대쪽도 미션클리어! 둘은 조용히 하이파이브했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의 무대 같은 식탁에 다시 돌아와 앉았다. 다현은 남은 잔을 비우며 늘희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늘희는 리모컨을 꺼내 스페셜 모드를 열었다.
늘희만을 위해 특별히 추가되었다는 기능은 ‘리즈’ 버튼에 있다고 했다. 가장 좋았던 시절, 가장 열렬했던 그 시절 자신의 모습으로 언제까지나 보여지고 싶다고, 늘희는 말했다.
“그때 나 알잖아.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었지. 뭘 하든 거침이 없었어.”
“그래 맞아. 진짜 그랬지. 근데 늘희야, 너 지금도 그래. 변함없이 멋있고 변함없이….”
하지만 다현은 친구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을 안다.
“아니. 난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싫어. 나도 그때의 내가 그리운데 남편은 오죽하겠어….”
며칠이 지났다. 늘희에게 알 수 없는 문자가 왔다.
[3.14159265358979…]
바로 전화를 걸어보았다. 숫자는 원주율이었다. 수학이라면 질색을 하는 늘희가 원주율을 보냈다면 진귀한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늘희는 리스연구소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표하며 말했다.
“나, 아직도 꿈 같아! 하루에 세 번을 했단 말이야. 세 번!”
다현은 축하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늘희의 목소리에는 리즈 시절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런데 하루 세 번이면 3이지 왜 3.1415...야? 소수점은 뭔데?”
으흐흐흐흐. 음흉한 웃음으로 뜸을 들인 늘희는 귀한 보석을 꺼내듯이 답을 해주었다.
“한 번 더 할 뻔했거든. 네 번을 할 수 있었다고! 결혼 전에도 그렇게 못했었는데. 남편이 의욕에 넘쳐서 또 달려드는 걸 다음 날 출근 핑계 대면서 말리느라 혼났어. 햐, 어쩜! 하루아침에 이렇게 달라지니!”
늘희의 박수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정말 그렇게 좋아졌어?”
늘희의 말을 믿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과하게 심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관계가 정말 그 렌즈 하나로, 장난 같은 착시현상 따위로 해결된다는 것이 우습게 느껴졌다. 부부는 그렇게 단순하고 가벼운 관계가 아니지 않냐 이 말이다.
“그렇다니깐. 그 사람 눈빛이 확 가더라고!”
다현은 자세히 얘기해 보라고 추궁했다.
“너희 부부 다녀간 바로 다음 날 아침이었어. 주말이었잖아. 나도 은근 술 많이 마셔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지. 그런데 어디서 쁘득쁘득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물소리도 들리고. 어렴풋이 일어나서 보니까, 세상에, 남편이 샤워를 하고 있더라. 절대 그럴 사람 아니거든! 주말에 집에 있으면 이틀 내내 양치 한 번도 안 하는데, 그날은 혀를 얼마나 닦아대는지 우웩우웩 대면서 정말 열심히 닦는 거야.
잠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잠이 들었는데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내 위에 올라타더라? 잠자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나? 며칠 전만 해도 입냄새 난다고 아침 침대에선 말도 못하게 하던 사람이 글쎄, 흐트러진 잠옷도 너무 섹시하고 이불 걷어차는 다리의 각도도 예술이라면서 지금 당장 하자고 난리를 치더라니까?”
“어머, 진짜 리즈 시절의 네가 보이는 거야?”
“아마 그렇지 않을까? 연구소에서 그랬거든. 그 사람의 체액을 분석해서 그 안에 담긴 성적 판타지를 증강현실로 구현한다고 했으니까, 아마도 우리가 가장 왕성했을 때의 내 모습일 거야.”
잘 됐다고, 축하한다고, 앞으로 매일매일 했으면 좋겠다고 늘희를 응원하면서도 다현은 뒤에 남는 여운을 지울 수 없었다.
“너도 해보면 바로 알게 될 텐데. 너 정말 안 할 거야?”
“응... 우리 부부는 아직 괜찮다니까... 그 날도 그냥 따라가본 거잖아.”
“하긴 너희 남편 점잖아서 바람피울 일도 없고, 사서 걱정할 필요 없지.”
다현이 머쓱하게 웃었지만 전화기 너머의 늘희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참! 너 요즘 가인이 연락해 본 적 있어?”
며칠째 톡도, 전화도 안 되고 SNS 게시물도 안 올라오고 있다며 늘희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안 그래도 다현도 걱정하던 참이었다.
“아니. 연락이 안 돼. 무슨 일 있는 걸까? 가인이 그럴 애가 아닌데. 걔 기록 강박 있어서 SNS 하루도 안 빠뜨리고 올리는 애가 이렇게 감감무소식일 수가 있어? 이상해. 뭔가 일이 난 것 같아.”
다현에게 가인은 네 명 중에서도 특별한 친구였다. 극 내향인 다현은 학창시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느 정도 사회성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면 완전히 편해질 수 없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성인이 되어 만난 대학 친구들은 더 그랬다. 넷이 모이면 다현은 항상 듣는 쪽이었다. 그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편하진 않았다. 때로는 다현도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런 순간마다 가인이 다현 옆에 있었다.
가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다현의 감정이 어느 정도 추슬러지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은 이래.’,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따위의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었다. 섹종이 멤버 중 유일한 이과생이었던 가인은 상대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어주면서 논리적인 오류를 짚어주는 편이었다. ‘아까 네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봤는데...’ 로 시작하는 가인의 말이 냉정하고 정 없게 들릴 수도 있을 테지만 다현은 아니었다.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의 말을 정성스럽게 곱씹어보고 그 의미를 검증한다는 건 깊은 애정과 관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노력이다. 가인만큼 다현의 일을 자기 일로 여기고 같이 고민해주는 친구를 만난 적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가인이 신경 쓰였었다. 그런데 늘희까지 그렇다고 하니 다현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안 그래도 가인 부부의 문제는 섹스의 횟수나 만족도만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기 얘길 잘 하지 않는 성격의 가인이 몇 년 전부터 부쩍 공부에 몰두하는 것이, 다현은 왠지 순수한 학구열처럼만 보이지 않았다. 앎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시도, 방법을 찾아보려는 안간힘 같았다. 그게 뭘까 궁금해도 묻지 못하는 다현은 가인이 언젠가 말하고 싶을 때가 찾아오면 그 상대는 자신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가인이 필요로 한다면 다현은 언제든, 어디서든, 그게 무슨 일이든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굳게 닫힌 가인의 SNS 채널들을 살펴보았다. 인스타그램, 블로그, 트위터, 브런치. 사진보다는 글로 심경을 토로할 수 있는 대부분의 채널을 가진 가인은 어느 날 대문을 모두 닫아버렸다.
가인의 직장 상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어보았다. 일주일 휴가를 냈는데 복귀 시점이 나흘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사원명부를 열람해 동거인에게 전화를 해보아도 받지 않았다며, 가인의 동료 직원은 오히려 다현에게 관계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다현은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단톡방을 열어 135개에 달하는 톡을 모두 스킵하고 최신 내용부터 올라가 보았다. 대부분이 화영과 늘희였고 가인은 열흘 전까지, 주로 단답형의 메시지만 올린 상태였다. 이후 모든 말풍선 옆에 1이 남아있었다. 가인이 톡도 확인하지 않고 있단 얘기다.
다현은 화영과 늘희에게 사태를 알렸다. 이쯤 되면 실종이 맞다는 판단이었다. 집에도 가봐야겠고, 가족들에게도 연락을 해봐야 했다. 실종신고를 해야겠다고 텍스트를 입력하고 있을 때 ‘우리가 먼저 찾아보고 못 찾았을 때 하자’고 화영의 텍스트가 먼저 올라왔다. 그러자. 셋은 각자의 루트를 최대한 활용해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다현은 가인의 집으로 갔다. 항상 근처에서 보고 집엔 가보지 못했었다. 가인의 남편이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 부딪히면 불편할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복도식 아파트의 복도를 지나 기억하고 있던 동호수 앞에 섰다. 긴장한 손을 붙들어 벨을 눌렀지만 예상대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집 앞에 놓인 흔적들이 가인 부부가 오랫동안 들어오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배달 가방 안의 우유 팩이 상한 상태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택배 박스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지금 가인인 어디에 있을까.
망연자실해 있던 다현의 눈에 현관문 사이 끼워진 노란 종이가 들어왔다. 포스트잇을 딱지 모양으로 접은 쪽지였다.
‘부부관계와 생물 진화의 역학에 관한 첫발을 내디딜 때입니다. 섹스과학의 발전을 위해 부디 연락 부탁드립니다. 김오치 연구원 010-9876-4321’
다현은 단톡방을 열어 가인의 마지막 흔적으로 되짚어 올라갔다. 화영과 늘희의 일상적인 수다 사이, 뜬금없는 가인의 마지막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역시. 내 남편은 연구대상이었어.]
다현은 곧장 김오치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다현이 김오치의 번호를 아는 것은 김오치가 다현의 번호로 꾸준히 문자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구소 번호의 웹 발신 문자였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김오치 개인 번호로 보내졌다. 다현은 불편했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김오치는 ‘다름이 아니라’로 시작하는 문장을 자주 썼다. ‘다름이 아니라 늘희 회원님의 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 다현 회원님이 생각나 연락 드려봅니다.’ 라던가 ‘다름이 아니라 다현 회원님의 케이스에 적합한 연구가 최근 업데이트되었습니다.’ 같은. 그런데 김오치는 정말 다른 마음이 없을까? 가인에게 섹스과학 운운한 것이나, 다현에게 적합한 연구를 언급한 것만 봐도 김오치에게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했다.
여섯 번 소리샘으로 연결되고 난 후 일곱 번째에 김오치는 전화를 받았다. 내비게이션 안내음으로 보아 운전 중이었다. 다현은 바로 가인에 대해 물었다.
“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당신은 알고 있죠? 가인이 어디 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냐고요!”
김오치는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조금 다급해 보였다.
“잘됐네요. 다현 회원님도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가인 회원님 있는 곳을 압니다. 제가 지금 위치를 보낼 건데, 믿기 힘들어도 믿으셔야 합니다. 무조건 저흴 믿으셔야 가인 회원님과 배우자가 행복할 수 있어요.”
다현은 거칠게 차를 몰았다. 가인이 있다는 곳은 떡칠산의 중턱이었다. 시속 120킬로로 달리는 와중에 다현은 화영과 늘희에게 음성메시지를 보냈다. 평소의 다현이라면 ‘올 수 있으면 와. 바쁘면 괜찮아.’라고 했을 텐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얘들아, 무조건 와! 전속력으로!”
떡칠산 입구에 도착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라 따로 공원으로 조성된 곳이 아니었다. 평평한 공터를 찾아 주차하려고 보니 하얀색 벤츠 안에 김오치가 앉아있었다.
“가인을 데리고 뭔 짓거릴 한 거예요? 가인이가 위험해지기라도 하면 나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가인이 당장 데리고 와요!”
김오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친구를 그렇게 몰라요? 연락도 자주 했다면서 어떻게 그걸 모르십니까? 가인이 얘기 안 했어요?”
“뭘요? 내가 뭘 모른다는 거죠?”
김오치는 아무 말 없이 태블릿을 건넸다. 유튜브 영상이었다. 채널 이름은 ‘에스닉마이노리티* 리포트’. 영상의 섬네일에는 익숙한 얼굴, 가인과 가인의 배우자가 있었다. 다현은 다급히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저희 부부는....”
다다음주 수요일(11월8일), 3화에서 계속...
* 에스닉마이노리티 : 소수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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